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엇가는 전-정씨 여진통|「12·15 대타협」 후속처리 어떻게될까
여권이 청와대영수회담 합의사항의 실현과정에서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다. 백담사측이 전두환씨의 국회증언방법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데다 정호용 의원 역시 사퇴종용을 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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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년 환율 희망 섞인 예측 난무
임금·금리보다 더 무서운 환율-. 최근 경기논쟁과 관련, 「예고가 있을 수 없는 경제변수」인 환율을 놓고 갖가지 주장과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. 내년도 경영계획을 싸야하는 기업들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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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측 큰 양보에도 북 ″주저〃
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남북한을 가로막은 대화의 장벽은 높고도 두터 웠다 제2차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교환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3일 열린 남북적십자 제5차 실무대표 접촉은 예술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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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인의 사교
70년대까지의 한국의 경우처럼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미국의 보호아래 있는 독재국가의 야당 정치인들을 괴롭히는 갈등이 한가지 있다. 권력유지를 위해 물리적인 힘의 사용을 주저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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윤공희 대주교·법정스님 본지창간22주 특별인터뷰
우리는 지금 역사상 미증유의 변혁기를 맞고 있다. 지난 6월의 대전환과 합의개헌안의 마련으로 민주화의 시동은 걸렸지만 우리의 앞길에는 밝은 희망 못지않게 도전도 만만치 않다. 그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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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모른다" 버티자 물고문 시작
두손이 뒤로 묶인채 박종철군은 4명의 경찰관에 의해 양팔과 발이 들려 욕조물에 머리가 처박혀 숨져갔다. 발버둥도 소용없고 신음조차 낼수없는 물고문. 너비 6cm 욕조턱에 걸린 목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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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차례 개헌…오욕 굴절로 점철|제헌절에 되돌아본 얼룩진 헌정사
개헌 논의의 한복판에서 맞는 제헌절은 헌법의 구김살을 아픔으로 되새기게 한다. 흔히 하나의 사건은 무수한 역사적 요인들과 연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. 헌법이 정치의 중심 문제가 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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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회 본회차-지상중계
▲이원홍 문공장관(29일 중단됐던 답변계속)=TV드라마나 쇼프로가 호화스럽게 묘사되고 소비풍조를 조장시킨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. 앞으로 TV프로그램 편성에 있어 국민의 정서함양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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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는 경주막판 「늙은 말」에 걸었다|미·소의 비사태 대응 불 르마탱지의 분석
【파리=주원상 특파원】 필리핀정국이 급변하고 있다. 파리의 좌파계 신문 르마탱은 24일 『마닐라의「브루터스」들』이라는 해설기사를 통해 몰락직전의 「마르토스」독재체제를 둘러싼 미국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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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서 온 간첩
일본을 거점으로 대남침투를 기도해온 간첩망이 적발됐다. 그들은 모두가 재일 조총련조직을 발판으로 암약해온 자들이다. 이번 간첩사건은 두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충격적이다. 하나는 남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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회담터울이 왜 그리 긴가
73년 중단이래 처음 열린 남북적 본회담(8차)의 이틀간 회의가 모두 끝나고 북녘 대표들이 평양으로 돌아갔다. 회담결과에 대해서는 기대가 컸던만큼 아쉬운 감도 없지않으나 양측은 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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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춘「중앙문예」단편소설 당선작
장군은 오늘도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. 침실에서 시작해서 주방에 이르기까지 관저 전체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나서 정원으로 나섰을 때는 어느새 동쪽하늘이 희푸르게 밝아오고 있었다. 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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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028)한일회담, 김동조
이장관은 그의 장관 취임 직전과 직후에 나와 만나 『한일회담의타결을 위해 김사장을 주일대사로 기용할 생각이니 말아달라』고 정식으로 요청해 왔다. 이장관은 『김사장은 자유당시절 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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잃어버린 36년(33) 대륙의 일여인들|발굴자료와 새 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
일제의 대륙침략과 더불어 많은 일본인 여성들도 대륙으로 건너갔다. 그들중에는 남자 못지않은 활약을 보인 맹렬여성도 적지않다. 춥고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남자들도 힘겨운 마적의 여두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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퀸엘리자베드 수리로 애국논쟁
대영제국을 상칭하는 세계의 호화 여객선 퀸엘리자베드2호(6만7천t)의 보수공사를 서독의 보수공사를 서독의 한 조선소가 맡게돼 영국에서 「자존심과 애국심논쟁」이 한차례 벌어졌다. 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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프랑스의 스승
80년 4월 「사르트르」 가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의 한 잡지는 앞으로 누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이겠느냐는 여론조사를 했었다. 이 때 뽑힌 3인이 구조주의 철학자 「레비-스트로스」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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버마는 왜 주저하는가
아웅산국립묘지의 암살폭발같은 엄청난 참사를 방지하지 못한 책임이 버마정부에 있다는것은 이미 여러차례 지적했다. 그리고 버마의 최고실력자 「네·윈」 장군도 전두환대통령에게 직접 사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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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14)침략의 제물|발굴자료와 새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
조선왕실 최후의 사람들은 민족과 아픔을 함께 하지 못했다. 오히려 민족의 한을 깊게 만들기까지 했다. 그 표본이 영친왕으로 일컬어지는 최후의 왕세자 이은이다. 이은의 일본화 과정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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잃어버린 36년(13)항일의 해외기지④ | 발굴자료와 새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
한국병합 이후의 조선총독부 무단정치는 이름 그대로 헌병·경찰의 탄압일변도였다. 탄압이 가혹했던 것만큼 민족의 저항도 줄기차게 이어져 나갔다. 그런 항쟁속에서 외국인은 한국의 독립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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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9) 대한제국의 최후
l910년8윌29일 전국각지의 일본수비군들이 시가행진을 벌였다. 서울거리에는 헌병과 순사가 30m간격으로 도열해 있었고 단 두 사람만 모여도 엄중히 취조해 흩어지게 하는 삼엄한 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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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146)-자유당과 내각(39)
자유당의 비극적 종말을 장기집권과 그것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폐단들에 연유한다. 자유당의 장기집권은 이대통령의 3선을 밀고갔던 사사오입개헌을 출발점으로 한다. 그러니까 그 개헌은 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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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식이 통하는 사회를
우리는 지금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고 경제성장을 지속시키며 정치발전으로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져가야할 과제를 안고있다. 그러나 대내적으로 보면 정치발전은 미흡했고 경제불황은 계속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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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3420)사각의 혈투 60년(38)|김영기
해방 전 한국인 복서들의 활동무대는 중국에도 있었다. 인종 박람회장을 방불케 하던 국제도시 상해였다. 이 곳에는 일본인·중국인·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·필리핀·독일 등 전세계 각국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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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다트최후의회고록 제2부 『내가 알고있는것들』
이스라엘이 81년에 인접 레바논과 이라크에 대해 적대행위를 함으로써 나의 예루살렘방문으로 시작된 중동평화정착 노력은 와해의 위기를 맞았다. 그해 4월 이스라엘의 레바논에대한 보복폭